건기식·임테기 이어 상비약까지…판매 품목수 확대
약사들, “편의성 NO! 건강권 수호!” 결의대회 개최

정부가 편의점에 안전상비의약품 판매를 허용한 지 근 5년 만에 ‘규제 완화’라는 이름의 활시위를 당겼다. 그 활은 약사들에게도 겨누어졌다.

임신테스트기가 영업신고 절차 없이 판매가 가능해지고, 건강기능식품의 판매 사례품 제공이 한시적으로 허용된 데 이어 정부는 7월 5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내년 상반기 중 안전상비의약품 판매품목을 20개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서비스 발전',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하에 입지와 직역을 위협당하는 약사들, 방패를 들고 반격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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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의약품

상비약 사용실태·소비자 수요조사 통해 품목 선정
안전상비의약품의 품목수가 확대된다는 관계 부처의 논의가 수면위로 드러난 건 5월 30일 한 경제매체의 보도에서 시작됐다. 현재 편의점에서 판매중인 13종의 안전상비약을 100종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그러나 논의의 주체인 기획재정부는 “전혀 결정된 바 없다”, 보건복지부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대한약사회 역시 ‘금시초문’이라며 “복지부는 결단코 네 개 품목을 추가시키려 한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표면적으로는 “없다”지만 규제 완화를 위한 물밑작업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결국 정부는 의료 등 7개 분야에 대한 '서비스경제 발전전략'을 확정하면서 “편의점 판매 의약품 수를 올해 안에 20개로 늘리겠다”고 공표, 품목 선정 논의에 착수했다.

약사법 상 안전상비약은 ‘20개 품목 이내의 범위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해 고시하는 의약품’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편의점 상비약에 대한 소비자 수요조사를 벌여 지사제 등 7개 품목을 추가할 예정이다.

이에 기재부와 복지부는 “복지부 주관으로 안전상비약 사용 실태와 소비자 수요조사와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으로 구체적인 품목 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편의점 안전상비약 시장, 연 2백억 규모 성장
편의점은 그동안 안전상비약을 얼마나 판매해 왔을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종합정보센터의 ‘13개 품목 안전상비약 공급량 및 공금 금액 현황(2013년~2015년)’ 자료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약의 공급량이 매년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상비약 13개 품목의 출고금액(공급가 기준)이 2013년 154억원대에서 2015년 239억으로 3년간 약 84억원 이상이 증가한 것.

이는 지난해 메르스로 인해 사람들이 병원을 기피하면서 편의점에서의 해열제 등 상비약 판매가 급증한 것으로 보이지만 해마다 꾸준한 증가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안전상비약 판매 편의점수는 2013년 23,684개소에서 2014년 25,227개소, 2015년 27,888개소로 증가해 약 4천개소가 늘었다.

매출량이 가장 높은 시간대는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4시간이었다. 편의점 씨유(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에 따르면 2014년에는 하루 매출량의 약 50%가 저녁 6시부터 6시간 동안 발생했으며, 주말과 휴일 등의 평균 판매량도 높았다고 밝혔다.

편의점 상비약 판매 시행 초기였던 2013년에는 전국의 2만5천여개 편의점이 업계 총 매출 약 11조9천억원을 달성했으며, 상비약 판매 편의점은 약 3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상비약 판매 10곳 중 7곳 불법판매
그러나 편의점 10곳 중 7곳은 상비약 판매 시 준수사항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위반사항은 동일제품을 2개 이상 판매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대한약사회는 지난해 7~8월 35개 약학대학에서 추천받은 약대생이 안전상비약 판매업소 960곳을 방문해 판매규칙 위반 여부를 점검한 결과 715곳(74.5%)에서 준수사항을 위반했다는 조사 내용을 2월 말 공개한 바 있다.

준수사항 위반건수는 867건. 이중 동일제품 2개 이상 판매가 629건(72.5%)로 가장 많았다. 안전상비약은 동일제품을 1명에게 하루 1개 이상 판매가 불가능하다.

이어 혼합진열 135건(15.6%), 등록증 미게시 57건(6.6%), 주의사항 미게시 24건(2.8%), 가격표시 미게시 21건(2.4%), 안전상비약외 판매 1건(0.1%) 순이었다.

판매업소 715개 중 1건 위반한 업소는 574곳(80.4%)이었다. 2건 동시 위반은 122곳(17.0%), 3선 동시위반은 19곳(2.6%)이었다.

지난 2014년에도 안전상비약 판매업소 1,178곳을 점검한 결과 866곳(73%)이 준수사항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도 약사회, “문제의 본질은 ‘안전성’” 한 목소리
이에 편의점 판매 안전상비약 품목수 확대 소식을 접한 약사회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최창욱 부산시약사회장은 “약국은 그저 처방·조제만 하라는 의미”라며 “중요한 사안이 화상투약기에 가려지고 있었다. 국가가 약국을 이렇게 내몰아 버리면 곤란하다”고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정현철 광주시약사회장은 “정부의 규제 완화에는 순기능이 있지만 역기능도 존재한다”며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에게 생명과 건강에 대한 것을 일임하면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우려혔다.

이어 “이 현안을 편의점과 약국의 영역 혹은 이익다툼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안타깝다”고 토로하며 이는 “건강권 수호에 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광훈 경기도약사회장 역시 “규제 개혁을 하면서 국민의 안전성에는 관심이 없다”며 “정부는 ‘환자가 알아서 치료하라’고 유도하고 있다. 의약품으로부터 안전을 돌보는 데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편의점이 규정을 잘 준수하면서 상비약을 판매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첨언했다.

대한약사회 투쟁위, ‘결의대회’ 개최로 강력 대응
대한약사회는 정부의 발표 당일 즉각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약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안전상비의약품 품목확대 계획’의 즉각 철회를 강력하게 주장한다”며 “상비약 품목 확대는 판매현장의 불법적인 행태는 안중에도 없이 무분별한 품목확대만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라고 개탄했다.

또한 “국민을 의약품 오남용의 위험으로부터 지켜 부작용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 지적하며,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의 불법적인 행태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판매자에 대한 의약품안전교육 강화와 미허가 업소의 안전상비의약품 판매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안전상비의약품의 무분별한 판매로 발생하는 모든 사고의 원인은 정부에 그 책임이 있다”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정부의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를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약사회 규제개혁 악법 저지 투쟁위원회는 규제개혁의 문제점을 알리고 투쟁 의지를 결집하기 위해 7월 15일 ‘국민건강권 수호를 위한 규제개혁 악법 저지 전국 시도 지부장 및 분회장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규제개혁 악법 저지 투쟁위원회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려는 방안이 약사직능 훼손의 도를 넘었다는 판단”이라며, “구체적인 투쟁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결의대회 개최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선남 대한약사회 상비의약품관리본부장은 “편의점에서 상비의약품이 어떻게 판매되는지에 대한 실태 조사를 착수할 계획”이라며 “그동안 조사한 데이터를 축적해 대관업무에 도움이 될 자료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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