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 동물의료 병원집중…“수의사 독점 강화 야기”
수의사회, 시행령 개정-수의간호사제도 도입 놓고 협의

지난 5월 15일 한 동물 관련 TV프로그램에서 방송된 ‘강아지 번식장’ 실태는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무자격자인 번식장 주인이 강아지를 강제 교배 시키고, 인공수정뿐만 아니라 마약류인 마취제로 마취시킨 후 제왕절개를 하는 등 경악할 장면들이 전파를 탔기 때문.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동필)는 개·고양이 자가진료 폐지 관련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즉각 반발한 약사단체와 폐지를 환영하는 수의사단체와의 갈등이 지난 '메리알코리아 시정명령'으로 점화된 데 이어 갈수록 거세지는 양상이다.

농림부, “약국의 개·고양이 백신 주사는 불법”
대한약사회 동물용의약품특별위원회(위원장 김성진)와 대한동물약국협회(회장 임진형)는 6월 8일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를 방문해 자가진료 폐지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임진형 대한동물약국협회장에 따르면, 농림부는 “약국에서 개·고양이 백신, 치료제, 주사제 등을 판매했을 때 이를 수의사가 불법으로 신고한 경우 사법부의 판단에 맡긴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이어 농림부는 주사행위는 전부 의료행위로 간주한다는 사법부의 판례를 제시했다.

임진형 회장은 “결국 개·고양이 동물약을 판매·주사한 모든 약사들은 범죄자가 되는 법을 제정한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전국 4천개 동물약국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야말로 동물약국 죽이기, 반려동물 보호자 호구만들기”라고 분개했다.

또한 임 회장은 농림부가 “당신 자식이라면 약국에서 백신을 맞히겠느냐”고 되물으며 “미국 30개주에서 약사가 독감 백신을 주사하고 있다”고 응수한 걸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아지 번식장 경악스런 실태…마약류 불법취급 엄단부터
TV프로그램 ‘강아지 번식장’ 편에서 나온 케타민과 졸라틸은 마취제 주사제이다. 제왕절개에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 약국에서 판매하는 진통제로는 충분한 마취가 되지 않는다.

이에 임 회장은 “마약마취제는 마약류인데 이를 견주가 어디에서 구했겠는가? 수의사가 처방해서 공급하는 것”이라며 “현재 동물병원에서 유통되는 마약류는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약사회 16개 시·도지부장 협의회는 6월 1일 성명서를 통해 “누가 보더라도 방송 내용 중 문제는 판매를 위해 강아지를 학대하고, 동물학대에 준하는 수술과 마약류를 불법으로 취급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를 막기 위해 당연히 번식장 운영기준을 강화하고, 마약류 불법 취급을 엄단해 불법 유통시킨 업자들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가진료철폐? “동물병원 독점 강화 야기”
동물약국협회는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을 통한 자가진료철폐는 강아지공장의 폐해를 막는 근본 처방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왜 농림부는 동물보호법 강화도 아니고 마약류 감시도 아닌,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이라는 대응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일까? 약국가는 입을 모아 “수의단체, 동물병원의 독점 강화”라고 힘주어 말한다.

지부장협의회 역시 “자가진료철폐로 모든 동물 관련 독점화하려는 시도는 수의단체의 오랜 숙원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며 “지금처럼 동물보건정책이 전무한 상황에서는 동물의료의 병원집중현상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무원 울산시약사회장은 “시장 규모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동물약을 병원에 빼앗기지 말고 약사 영역으로 되찾아 오기 위해 맞서 투쟁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임진형 회장은 “수의사회는 농림부에 자가진료를 폐지하지 않으면 수의간호사제도 도입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선결조건을 내걸었다며, 이는 곧 “동물병원의 독점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도”라고 꼬집었다.

반려동물 보호자들, “진료비 감당도 힘들어”
임진형 회장은 “백신을 주사하려면 무조건 동물병원에 방문해야하는데, 고양이 백신주사 비용은 동물병원이 4만원, 동물약국이 7천원”이라고 밝혔다.

동물약국협회 게시판에는 ‘star12**’라는 닉네임을 가진 유기견 보호자가 “병원약값이 한 달에 60만원 이상”이라며 “진료비, 검사비는 100만원이 훌쩍 넘는데 이젠 약까지 못 구하면 도대체 이 동물들을 죽이라는 겁니까, 살리라는 겁니까”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닉네임 ‘이혜**’은 “저희 미키(반려동물 이름)는 신부전이 심해 자가 수액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하루 3번 총 300ml가 넘은 수액처치를 하고 있는데 자가진료가 불가능하다면 저희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지부장협의회도 “선량한 동물보호자의 권리인 자가진료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과도한 경제적 부담만 증가시키고 유기동물 증가로 귀결될 것이 자명하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언론매체에 의하면, 연간 약 10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버려지고 있으며, 버려지는 이유 중 감당할 수 없는 진료비가 한 몫을 하고 있다.

1993년 동물병원이 국민들에게 직접 동물약을 판매하기 시작한 이후 20여 년이 흐른 지금, 4백여 개에 불과하던 동물병원이 3천여 개로 늘었고, 1999년 동물병원 진료 수가제를 폐지하면서 진료비가 폭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임 회장은 “동물 키우는 데 가장 힘든 부분은 바로 진료비 감당”이라며 “한국소비자원에서도 진료비가 사료비를 넘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자가진료는 동물학대”라는 수의사회
한편 대한수의사회(회장 김옥경)는 반려동물 자가진료 금지와 수의테크니션(동물간호사) 제도화 협상 추진 방향을 자문하기 위해 6월초 TF팀을 출범했다. 반려동물 자가진료 금지와 수의테크니션 제도화에 관해 임상수의사들에게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농림부 공식 TF에 참여하는 대한수의사회 및 한국동물병원협회에 전달하자는 취지다.

아울러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을 전제로 ‘반려동물 보호자의 투약을 어느 범위까지 허용해야 하는가’와 관련, 임상수의사 회원들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의견을 수렴할 것인가 등에 대한 현안을 논의해나가기로 합의했다.

또한 약사법 제85조 제7항 ‘약국개설자는 제6항(수의사 처방제) 각 호에 따른 동물용 의약품을 수의사의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다’는 약사예외조항으로 “자가진료를 실시하다가 동물이 사망하거나 위험에 빠진 일들이 많다”며 “동물에 대한 자가진료는 또 다른 이름의 동물학대 행위”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대한동물약국협회 게시판에는 수의사로 추정되는 닉네임 ‘이재**’을 가진 한 누리꾼이 “동물약에 대해 배우지도 동물의 생리나 병리를 배우지도 않으신 약사님들이 동물약을 파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동물병원비 비싸면 정부에 건의해서 보험 만들어 달라 하세요”라며 “6년제 거치고 나온 수의사 있는 나라 중에 한국이 제일 저렴하다”고 항의했다.

약사단체, “서명·민원제기 등 적극 대응할 것”
대한약사회 동물용의약품특별위원회와 한국동물협회는 현재 다음 아고라와 페이스북을 통한 자가진료 폐지 관련 서명운동을 전개 중이다. 위원회는 농림부 등 유관 기관에 대한 민원 제기와 언론 홍보도 적극 수행할 예정이다.

웹툰도 만들어 배포한다. 임진형 회장은 “ ‘자가진료, 자가치료’라는 말이 어려워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를 섭외해 웹툰을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지부장협의회는 농림부에 “강아지 번식장에 공급된 마약류 주사 유통과정을 철저히 조사해 불법 판매자와 사용자를 모두 고발조치하라”며 “강아지 번식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 문제가 있는 번식장의 기준을 강화하라”고 의견을 전달했다.

“화력을 끌어 모으고 있지만 쉽지 않다”는 임 회장은 “잘못된 정책이 추진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동물약을 취급하지 않는 약사들도 관심을 갖고 서명과 민원 제기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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