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독점 명분 없어, 한의계 내부정체성 확립 필요
국민 ‘최선의 치료’ 원할 뿐…새로운 세대 한의사 대안

의료계 내부에서 의료일원화의 당위성을 옹호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주제도 ‘의료일원화 왜 해야 하는가’ 이다. 이미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전제해두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한국의약평론가회(회장 이성낙)는 6월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016 상반기포럼 ‘의료일원화 왜 해야 하는가’를 개최했다. 한국의약평론가회는 “미래 의학은 국민을 위한 것이지 행정 당국이나 의료계, 한의계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들은 어떤 방법론이든 병을 낫게 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고 싶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의료일원화가 시대적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미래 의료,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 불가능

▲ 장성구 교수

첫 번째 발제자로는 대한의학회 장성구 부회장(경희대 의대 비뇨기종양학)이 나섰다. 그는 지난해 의료계와 한의계로 구성된 ‘국민의료 향상을 위한 의료현안 협의체’에 의협 대표로 참석했던 인물이다. 그는 당시 협의체 내에서도 같은 입장을 피력해왔다.

장 교수가 제시한 이원화된 의료체계의 문제점은 크게 다섯 가지이다. △국민들의 혼란 △의료비 상승의 주요 원인 △의료자원의 낭비 △미래의학에 대한 대처 능력의 상실 △의사 대 한의사의 영원한 갈등 등이 그것이다.

장 교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현대 의학이 존재하는 이유를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전제했다. 미래의 의학은 반드시 변할 것이고, 의료의 중심에 똑똑한 국민들이 있기 때문에 의료인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장 교수는 이 변화 중의 하나가 ‘의료 일원화’라며 의료 일원화는 국민을 위한 이 시대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는 국민을 위한 것이다. 전 세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비합리적인 굴절된 이 모습(의료 이원화)을 우리의 다음 세대까지 유산으로 남길 수는 없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의 지속은 정부, 국민, 의료계, 한의계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료의 형태는 미래의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한의계, 정체성 확립 노력 게을리 해
장 교수가 변화를 주문한 대상은 한의계이다. 한의계 스스로 정체성 확립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평가이다.

그는 한의계가 당당하게 의학의 한 형태로 새로운 좌표를 설정할지, 아니면 독창성과 정체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현 상태를 유지할지 선택해야 하며 현대 의학에 편승해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 모든 문제의 결정은 한의계 스스로 해야 한다며 내부적인 정체성 확립을 주문한 것이다.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서도 ‘위험한 용기’라고 선을 그었다. 경희대 비뇨기종약학과 교수인 그는 “40년 이상 임상 현장에 있었지만 나 역시도 꼭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판독을 듣고 나와 의견이 달라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며 “한의사들 스스로 현대 의료기기 사용이 어떤 형식으로 한의학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되물어야 할 시점”이라고 비난했다.

한의계가 주장하는 ‘협진’ 역시 이원화를 고착시키는 미봉책이라고 지적한 그는 협진이 의료비를 상승시키는 주범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의료계와 한의계 모두 동시 대면진료를 시행하지 않는 한 협진 활성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의료계를 향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장 교수가 가장 문제를 삼는 부분은 의사들이 진료독점권의 당위성에 대한 대국민적 이해를 구하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또 이제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일원화와 고착된 이원화 사이에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의학과 한의사를 엄연하게 합법적이고 현실적인 존재라고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먼저라는 말도 덧붙였다.

국민 입장에선 ‘꿩 잡는 것이 매’
하지만 장 교수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역시 ‘국민’이다.

현재 이원화된 국내 의료시스템 안에서 국민들은 한의학과 한약에 대해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의 발표에 따르면 ‘한방의료에 대한 인식 및 만족도 조사’에서 315명의 응답자 중 81.9%가 ‘한방은 과학적’이라고 답했고 50%가 ‘한약은 양악에 비해 안정적’이라고 답했다. 물론 이 연구는 한의대와 한의학 연구소가 공동으로 한방진료를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한국 갤럽에서 조사한 ‘한약의 안전성에 대한 조사’에서는 1010명의 응답자 중 81.1%가 ‘옛 문헌에 나오는 신규 한약에 대해 임상 시험을 해야 한다’고 답했고 60.7%가 암 치료제로서 한약의 임상시험 여부에 대해 매우 공감한다고 답했다. 논리적으로 모순적인 결과인 셈이다.

장 교수는 이러한 결과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40년 임상 경험의 결과 ‘우리 것은 귀한 것이다’라는 전통의학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지만, 과학화 되지 않은 한약에 대한 두려움 역시 공존하고 있다는 것.

그는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병을 낫게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계와 한의계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는 이 논쟁에 열을 올리는 것은 두 직역 단체와 행정당국일 뿐, 정작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꿩을 잡는 것이 매’라는 식으로 가장 최선의 치료법을 제공받는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환자 단체, 안전성 수반돼야 일원화 가능

▲ 안기종 대표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서 나온 안기종 대표도 말을 보탰다. 안 대표는 “국내 말기 암환자들 대부분이 건강보조식품이나 민간요법과 같은 부분을 비급여로 비제도권 안에서 소화하고 있는데 비용과 효과에 대해 불안감이 크다”며 “이런 부분을 양한방이 의학적 검증을 거쳐 검증해준다면 환자들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안 대표는 ‘안정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역시 편의성 측면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허용에 동의하지만, 교육 문제 등 조금만 설명을 하면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는 것. 한 진료과만 20~30년 한 전문의들도 오진을 하는데, 한의사가 일정한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안전하고 정확한 진료가 가능할지 여기에 대한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한의사 세대, 의료일원화 첨병

▲ 조병희 교수

이어진 발제에서는 서울대학교보건대학원 조병희 교수가 새로운 한의사 세대가 이미 의료 일원화를 실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한 그룹은 중소병원에 근무하는 한의사들이다. 의사들과 같이 근무하면서 상호 진단치료 기술에 대한 관찰, 비교, 경쟁을 거쳤기 때문에 한의사들 중에서 의학영역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그룹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은 의학적인 진단을 거친 후, 한의학적인 치료법을 고민하기 때문에 실제 임상에서 의사와 같은 방식으로 진료하며, 현대 의료기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1990년대 이전의 한의사들과는 다르다는 것이 조 교수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은 영상기기 진단 처방권이 없기 때문에 우회적 처방을 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의료 이원화의 틀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90년대 이후 한의사, Hybrid Medicine 가능
조 교수에 따르면 한의사들은 1992년 약사들과의 한약조제권 분쟁에서 승리하면서 다른 세대의 한의사를 배출하게 됐다. 역사적으로 이전과 달리 엘리트 그룹이 한의학과에 입학하게 됐고, 정부에서 복지부 내 한방정책관을 설치하고, 한의계 처방의 건강보험급여를 인정하면서 의료체계 내에서 제도화된 한의사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도 한의학연구원을 설치하고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등 한의학의 과학화를 위한 시도를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이다.

조 교수는 “한의계에서는 오랫동안 의료일원화를 반대하고 협진을 주장했지만, 점차 임상에 나가있는 한의사들 중에서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하면서 다수는 일원화에 긍정적인 의사를 갖고 있다”며 “1990년대 이후 한의사들의 교육이 일원화되는 방향으로 이미 진행되고 있어 생의학이나 한의학 치료법들을 선택적으로 조합할 수 있는 Hybrid Medicine을 추구해갈 가능성이 있는 세대로 자리매김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한국은 의료일원화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단계는 넘어서 의료통합의 과정에 진입해있다”며 “두 단체 모두 통합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아직 큰 상태이기 때문에 탈정치적 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일원화 논의 중심에는 환자 있어야
이번 토론회에 대한 대한의사협회는 말을 아끼고 있다. 최근 공단 주최의 한 특강에서 추무진 회장이 의료일원화 추진 의지를 드러내 불신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발제를 맡은 대한의학회 장성구 부회장 역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며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의학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번 포럼의 좌장을 맡은 한국의약평론가회 김건상 부회장은 “의료일원화가 해묵은 주제라고 식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끊임없는 노력에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라며 “중요한 것은 논의 중심에 환자를 놓고, 환자 중심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직역단체의 첨예한 대립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논리 속에 우리가 정작 잊고 있었던 것은 두 단체의 존재의 이유인 ‘국민들의 건강’이 아닌지, 의료계 내부의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약평론가회>
한국의약평론가회는 의사 및 약사평론가들이 친목을 다지고, 전문가적 식견을 모아 의약학계 발전에 필요한 여론조성에 앞장선다는 목적으로 1997년 창립됐다. 현재 권이혁 전 보사부장관(명예회장)을 비롯해 의약학계 명사 2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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