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의료기관에서 수면장애 관리하도록 보험 적용 필요
서울 세계수면학회 2천명 넘게 참석, 국내 학계 발전 시발점

‘잠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양질의 수면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최근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는 인구가 많아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3년 스트레스 등 정신적인 원인에 의한 비기질성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6만4874명. 수면무호흡증과 코골이 등 후천적 요인으로 인한 기질성 수면장애 환자까지 포함하면 64만5560명에 달하는데,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5년 전인 2009년 44만8619명에 비하면 40% 이상 증가한 수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수면’에 대한 의학적인 접근을 도외시한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급여화 된 수면다원검사 등이 우리나라에서는 찬밥 신세이다.

때문에 지난 3월 21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6차 세계수면학회(World Association of Sleep Medicine, WASM)’는 큰 의미를 갖는다. 수면장애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여 수면에 대한 최신 지견을 나누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 세계수면학회 홍승봉 조직위원장

지난 3월 23일 학술대회가 한창 진행 중인 코엑스에서 세계수면학회 홍승봉 조직위원장(삼성서울병원)은 “이번 대회는 우리나라 수면의학계가 세계 최신연구와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일반 국민과 정부 관계자에 수면장애의 진단과 치료의 필요성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60개국 2천명 넘게 참석, 역대 가장 성공적인 개최
이번 학술대회에는 전 세계 58개국에서 수면의학자 2000여명이 넘게 참석해, 60여개 학술 심포지엄과 600여개의 논문이 발표됐다. 특히 참가자 중 1300여명이 해외에서 한국을 찾은 학자들이다. 매년 1400~1500명이 참석했던 것에 비하면 올해는 더욱 성공적인 개최라는 것이 홍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그는 학술대회 기간 중 ‘특별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수면무호흡증의 수술 치료법 △수면장애 유전성 연구 △기면병 유전적 발병기전 △수면, 인지기능 학습 관련성 △다양한 수면일주기장애 최신 진단/치료기법 소개 △만성불면증 인구역학적 연구 임상적용 △렘수면행동장애 신경퇴행성질환 관련성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목젖입천장인두성형술 △상악하악골 전진술 최신 임상결과 등이 발표됐다.

수면장애가 만성질환 발생, 악화의 요인
홍 위원장은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전 국민의 30~40%가 수면장애를 앓고 있지만 이를 인식하고 치료로 이어지는 경우는 너무 적다”며 “수면장애를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이유는 고혈압, 당뇨병, 치매, 심혈관 질환 및 뇌졸중의 발생과 악화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수면무호흡증 환자의 경우 56%가 불면증을 동반하고, 일반인에 비해 고혈압은 30배, 치매는 6배, 당뇨는 10~12배 발병율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불면증 환자 516명 중 불안증과 우울증을 앓는 비율이 56%로 조사(중국)되었고 △수면무호흡증을 앓는 운전기사가 2~7배가량 교통사고 위험이 높았으며(이집트) △수면시간이 7시간 미만인 사람들에게서 고혈압이 증가했고(필리핀) △40대 이상 25000명의 수면무호흡환자에게 양압호흡기를 사용하자 생존율이 높아졌으며(덴마크) △수면 분절을 겪는 노인일수록 뇌위 부피가 더 빨리 줄어들어 치매의 가능성을 높인다(캐나다) 는 등의 각국의 연구 결과가 소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8명의 수면무호흡환자 55.6%에서 성욕감퇴를 보인다는 연구와 △ 40~60대 환자에게 양압호흡기 치료 후 뇌졸중 발생률을 유의하게 감소시켰다는 연구 결과 등을 소개했다.

대한민국 보건의 사각지대 ‘수면의학’
때문에 홍 위원장과 대한수면학회가 강조하는 것이 ‘수면다원검사’의 급여화이다. 사회적으로 수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에 검사의 급여화가 지연되고 있는 것. 홍 위원장은 “일본은 수면다원검사는 30년 전에, 양압호흡기는 20년 전에 보험이 적용됐다”며 “OECD 국가 중 수면장애 검사가 이렇게까지 급여화 되지 않은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현재 수면다원검사는 60~70만원, 양압호흡기는 150~250만원 선으로 환자가 100% 부담해야 한다.

이는 낮은 사회적 인식뿐 아니라 국내 수면의학전문의의 부족과 진료과별로 분산된 치료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수면의학전문의는 대략 400명 정도로 대부분 신경과와 정신과가 담당하고 있지만 이비인후과와 소수의 내과 전문의가 포함된다.

홍 위원장은 “해외의 경우 호흡기내과나 심장내과 전문의가 굉장히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내과 선생님들이 적다”며 “1차 의료기관에서 수면의학을 진단하고 치료해야 만성질환 등을 예방하는 실질적인 의미의 ‘치료’가 가능해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시아수면학회 창립, 내년 첫 학술대회
이번 학술대회와 함께 대한수면학회가 추진한 일이 ‘아시아수면학회’ 창립이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뒤쳐진 아시아 국가끼리 힘을 모아 연구의 아이디어와 성과를 공유하는 모임을 조직하는 것이다.

참가국은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일본, 대만, 홍콩, 인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카자흐스탄, 오만, 베트남 등 총 16개이다. 이미 지난해 6월 학회 창립을 위해 중국 베이징에서 1차 포럼을 갖고 이번 학술대회 기간 중 2차 포럼을 연 뒤, 3월 24일 공식적으로 학회를 창립했다. 내년에는 ‘제1차 아시아수면학회 학술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회장은 대만의 Dr. Chen으로 선출됐고, 차기 회장은 1~2년 뒤 홍승봉 조직위원장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홍 위원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불모지였던 국내에서도 수면장애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며 “대한수면학회가 그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매진하겠다”고 다부진 포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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